용산 횡설수설 17

지금은 사라진, 돌아가는 삼각지

용산구의 지명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곳은 어디일까? 아마 삼각지일 것이다. 배호의 노래 ‘돌아가는 삼각지’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삼각지에는 돌아가는 삼각지로타리가 없다.
이익주(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삼각지 입체교차로(1967~1994)

로터리(rotary)란 차량이 교차하는 지점을 원형으로 만들어 신호등 없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한 교차로를 말한다. 지금 서울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곳곳에 있었고, 지방 중소 도시에서는 지금도 간혹 만나볼 수 있다. 혜화동로터리처럼 옛 모습을 일부 간직한 채 신호등이 설치된 곳도 있다. 로터리는 차량이 정차하지 않고 원형 교차로를 돌면서 우회전, 직진, 좌회전, U-턴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므로 매우 효율적이지만, 통행량이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제 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1980년대 이후 서울에서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런 로터리가 삼각지에도 있었다. 하지만 삼각지로타리는 서울의 여느 로터리와 달랐다. 로터리와 고가차도를 혼합한, 즉 공중에 떠 있는 로터리였던 것이다. 이런 시설물은 전국에서 삼각지로타리가 유일했다.

유일한 입체교차로, 서울 최초의 고가도로

삼각지(三角地)는 말 그대로 삼각형의 땅을 뜻한다. 언제부터 이런 이름이 붙여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강과 서울역, 이태원에서 오는 세 길이 만나 삼거리가 생기면서 삼각지라는 이름도 생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부선 철도 개통과 함께 서울역에서 용산역을 거쳐 한강에 이르는 신작로가 만들어지고, 또 그것과 거의 동시에 둔지산 일대에 일본군 기지가 들어서면서 이태원 쪽으로 도로가 확장된 이후, 그러니까1910년 전후의 일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서울역과 한강, 이태원에서 오는 길이 만나는 삼거리였지만, 뒤에 공덕동에서 철도를 건너오는 길이 더해져 사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 뒤 언젠가 사거리 통행 방식을 로터리로 만들면서 1945년 해방 이전에 이미 삼각지로타리가 출현했다. 미국 국립문서관리청에 소장되어 있는 1948년 삼각지 사진에 로타리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 사진은 삼각지역 13번 출구 앞 공원에 세워진 삼각지 안내문에 있다.)

삼각지로타리를 입체화하겠다는 계획은 1966년에 나왔다. 그해 9월 28일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은 시청 앞과 삼각지 등 네 곳에 “논·스톱으로 완전 회전할 수 있는 입체교차로를 신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 공사가 이루어진 곳은 삼각지가 유일했다. 삼각지 입체교차로 공사는 1967년 1월 5일에 시작해서 꼭 1년 만인 12월 27일에 완료되었다. 그와 동시에 공덕동 쪽에서 경부선 철도를 건너는 삼각지고가차도가 건설되어 입체교차로로 연결됨으로써 한강대로와 이태원로, 백범로가 고가차도에서 교차하게 되었고, 교통량이 많은 한강대로는 지상에서 직진할 수 있게 해서 원활한 흐름이 이어지도록 했다.

삼각지 입체교차로가 건설된 1967년은 서울의 도로 건설에서 기억할 만한 해이다. 고가도로의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청계고가도로가 1967년 8월 15일에 착공되었고, 아현고가도로, 서울역 고가도로 등이 그 무렵에 착공되었다. 그로부터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 초까지는 서울 시내 곳곳에 셀 수도 없이 많은 고가도로가 건설되었다. 그 가운데 삼각지로타리는 유일한 입체교차로일 뿐 아니라 고가도로로서도 서울 시내 최초의 것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이렇게 서울을 상징하는 명물이었고, 당시 서울에 온 관광버스들이 삼각지 입체교차로를 통과하지 않고 몇 바퀴를 빙빙 돌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현재의 삼각지역 사거리 (출처: S-MAP )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삼각지를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67년에 발표된 배호의 노래 ‘돌아가는 삼각지’이다.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노래를 아는 분들은 곡을 넣어 읽어보시길 바란다.)

삼각지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람을 아쉬워하며 비에 젖어 한숨 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 가는 삼각지

삼각지로타리를 헤매도는 이 발길 떠나버린 그 사랑을 그리워하며 눈물젖어 불러보는 외로운 사나이가 남몰래 찾아왔다 돌아가는 삼각지

이 노래는 무명 가수였던 배호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한국인이 좋아하는 대중가요 100선’ 같은 데 꼭 이름을 올리는 국민 애창곡이다. 한국 가요사에서 배호는 1950년대 이후 미국 팝송이 유행하는 속에서 1960년대 중반부터 이미자와 함께 트로트의 인기를 되살린 가수로 기록된다. 비록 30세에 요절해서 활동 기간이 아주 짧았고, 당시 기술의 한계 때문에 상태가 좋은 녹음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 아쉽지만, 지금 70대 이상 가운데는 배호를 최고의 가수로 꼽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이 노래는 1966년 4월에 만들어졌고, 그때는 삼각지 입체교차로가 계획도 되기 전이었다. 따라서 이 노래에 나오는 삼각지로타리는 입체교차로가 되기 전, 그러니까 일반적인 로터리 시절의 것이었다. 그래도 로터리는 원형으로 회전하는 길이었으니, 노랫말을 지은이는 회전하는(돌아가는) 로터리에서 발길을 돌리는(돌아가는) 한 남자의 외로운 모습을 중의적으로 그렸고, 그것이 이 노래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구내에는 배호 동상이 있고, 13번 출구 근처 공원에는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가 있다.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

고가도로 철거의 시대

삼각지 입체교차로는 1994년 12월에 철거되었다. 세월이 지나 시설이 노후화되고, 교통량이 늘어나면서 더 이상 효과적인 시설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더 결정적인 이유는 지하철 6호선이 그 아래를 지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1967년 완공된 지 27년만의 일로, 이로써 서울의 명물 하나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삼각지 입체교차로만이 아니었다. 2000년 이후로는 서울 시내의 고가도로들이 하나둘씩 철거되기 시작했다. 2003년 청계고가도로 철거가 그 기폭제가 되었다. 시설의 노후화, 지하철 공사 방해, 버스전용차로 단절 등 갖가지 이유에 도시 미관 개선이라는 명분까지 등장했다. 이렇게 해서 건설된 지 30년 정도 된 고가도로들이 철거되었다. 덕분에 교통이 얼마나 더 원활해졌는지 모르겠지만, 교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건설한 고가도로가 이제는 없어져야 교통이 원활해진다는 논리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고가도로가 없어지니 시야가 트여서 시원해지고 머리 위에서 내려오는 매연도 없어져 공기가 맑아진 것도 같다. 하지만 처음 고가도로를 만들 때는 이럴 줄 몰랐을까? 당장의 편리함을 위해서 지출한 비용은 물론이고, 건설과 철거 중에 겪어야 하는 시민들의 불편은 무엇으로 보상할까? 긴 역사 속에서 30년은 아주 짧은 시간이다.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은 우리를 30년 만에 그 많은 고가도로를 지었다, 부쉈다 한 변덕스런 사람들로 기억하지는 않을까?

이익주 교수는
KBS ‘역사저널 그날’, jtbc ‘차이나는 클라스’를 통해 대중에 잘 알려진 역사 전문가.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서울학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